우연을 기대 Anticipation of a Contingency

2022. 10. 18 – 11. 19
장소: d/p
참여작가: 신민, 시린 세노, 이민지, 장서영, 노예주 SHIN Min, Shireen Seno, Minji Yi, Seo Young Chang, Yeju Roh
기획: 조은비 Curated by Eunbi Jo
디자인: 박연주 Design: Park Yeounjoo
사진: 홍철기, 양이언 Photography: Cheolki Hong, Ian Yang
번역: 최원겸 Event: Won Gyeom Choe
공간디자인: 권동현 Space designed by Donghyun Kwon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2022년 우수전시 선정작 및 d/p 기획지원 15 2022 ARKO Selection Visual Art, d/p curator support 15
주최: d/p Hosted by d/p
주관: 새서울기획, 소환사 Organized by Saeseoul Society, Sohwansa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메세나협회, 우리들의낙원상가 Sponsored by Arts Council Korea, Nakwonmusic, Korea Mecenat Association

서문 *english ver. below

최근 미국의 한 바이오 기업이 수천 년 전에 멸종된 메머드를 복원하겠단 계획을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의 특이성은 쥬라기 공원식의 낡은 상상력보다는 그 목적의 참신함에서 비롯한다.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 메머드의 서식지를 조성해, 이로 하여금 초목 생태계를 되살려 기후위기를 극복하게끔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떠오르는 일련의 의문들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어쨌거나 그 기업은 이 계획으로 이미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 받았다고 하니, 어쩌면 몇 년 내에 털 달린 코끼리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현재로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실상 단 한 가지 뿐이다.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하나의 언설이, 이 쉽사리 납득가지 않는 부활을 합리화시키고 세속화시킨다는 것. 대체 무엇이 이 기적을 바라게 하는가.

그 힌트는 이 프로젝트의 보도자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메머드를 되살리기 위해, 영구동토에서 발견되는 메머드 사체의 DNA를 추출해 아시아 코끼리의 생식세포와 결합시켜 인공자궁을 통해 이를 잉태시키겠다는, 그 매끈한 설명에서 말이다. 이 얼토당토않은 계획이 그럴싸해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그와 같은 “복구가능”의 감각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라지거나 변형된 무언가를 되살리는 일에 이미 숙달되어 있다. 말하자면, 가령, ‘CTRL+Z’ 같은 것. 클라우드 컴퓨팅이 대중화된 이후 실수로 파일을 날리는 일 따윈 점점 줄어들고, 아무리 스마트폰을 초기화한대도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삭제된 대화는 복구가능하다. 온라인에서 잊힐 권리는 언제나 임시적으로만 주장되며, 온전히 죽는 게임 캐릭터 또한 존재하지 않고, 지나간 타임라인은 언제든 편집가능하다. 구겨진 차체는 말끔히 펴지고 피부는 재생되며 치아는 표백된다. 막대한 자본이 투여된 장르물에서 세계관이 확장될 때마다 가장 먼저 번복되는 것은 대량의 죽음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앞서, 코로나가 종식되면 우리의 일상이 회복될 것이란 어떤 믿음, 섣불리 구체화된 적 없는 기대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이처럼 복구할/될 수 있다는 감각으로 충만한 일상 속을 살고 있다. 그러니 안전하게 저장된 파일을 열듯 얼음 속에 고이 보관된 DNA를 불러내어 망가진 세계를 원상복구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또한 일견 ‘가능’할 성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각은 애초에 불순하다. ‘되살리기’의 감각은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고 저지른 죄를 무마하며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있길 바라는 욕망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메머드가 되살아나고 다시 번성한다고 한들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지구가 온전하게 리로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함께, 우리가 없던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따라서 기술을 통해 이 감각을 충족시키는 것은 세련된 회피전략에 다름 아니다.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복구된 것 또한 없다. 언젠가는 다 되돌릴 수 있을거란 주입된 감각 속에서 문제의 해결은 끊임없이 유예된다. 그리고 이는 제국주의 역사관에 의해 면밀하게 검토된다. 과거를 취사선택하여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결정 짓는 선형적인 서술 속에서 지배계급-남성들은 역사의 주체로서 이 세계의 시공간을 자신들의 ‘의지’ 아래 복속시킨다. 그들에게 있어 역사의 재서술이란, 억압되고 누락된 목소리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미 파괴된 것을 자신들의 권능으로 부활시켜 마치 없던 일처럼 만들 수 있다는 집요한 프로파간다인 것이다. 회복될 수 없는 것은 회복할 수 없다. 이 간명한 사실을 수용하는 것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움켜쥐고 있던) ‘시간’이라는 패권을 놓아버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기실 아무도 모르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절망할 참이라는 사실 말이다. 복구가능하다는 믿음에 매달릴수록 이 사실은 더욱 명백해보인다. 따라서 지배자들이 제 스스로 역사를 포기하길 기다리느니, 그 무능이 이미 까발려졌음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주체를 발명해내는 것이 더욱 가능한 선택일지 모른다. 문제를 유예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고도화시켜온 그들의 되살리기 수법은 머잖아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 전시는 사건의 흐름으로 정립되는 역사의 인과성을 폐기하고, 개인이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리는 현재적 우연성에 기댄다. 사회제도와 역사적 맥락의 틀 안에서 필연적인 결과를 상상하고 유의미한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예상 속에서 윤리적-미적 주체로서 자신의 의지를 행위로써 구현하는 것. 물론 이 태도는 어쩌면 엘리트주의적 접근이나 관조적인 시각쯤으로 비판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예술로 하여금 매혹적인 환상-으로 가장한 착각-을 더이상 불러일으키지 않게 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다시 말해, 오로지 우연에 기댄다는 것은, 상실된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 있으며 역사의 반복성이 우리를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기대를 접는 일이다. 지금 여기 기댈 것은 마주치는 개인들 뿐이다. 그리고 이는 서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곁을 발견하는 생동일지 모른다. 아무 것도 되살아나지 않는 세상에서 새롭게 살아가기. 그러면 어떤 우연이 일어날지 이 전시는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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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세노의 <꽃을 따는 것>은 미국령 식민 기간(1898~1946) 동안 필리핀에서 촬영된 흑백 사진들로 이루어진 비디오 에세이다. 시린 세노는 사진 속 나무 이미지를 경유해, 미국의 근대적 식민화 방식과 그에 활용된 사진 기술의 연관성을 드러낸다. 영상 속 이미지는 “자연물이 인공물이 되는 변형의 과정”을 담으려는 작가 자신의 욕망과 맞물려, 사진 재현에 내재된 선택과 소유의 의미를 질문한다.

신민은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적’이 되어온 인물들의 초상을 만들어 왔다. 신작 <가자>에서 작가는 얼굴 없는 낯선 인물들을 통해, 전작 속 ‘화난 얼굴의 군상’이 드러내던 것과는 또 다른 정서를 전달한다. 작가는 사회적 소수자로 대상화되어온 인물들이 ‘반격’을 시도하는 장면을 또렷이 표면화하고, 이와 동시에 이들을 작가 스스로의 구체적인 삶과 조우시키며 공동의 힘을 키우는 밑재료로 삼는다.

이민지는 실재하는 대상을 온전히 표상할 수 없는 사진의 표면과 이면 ‘사이’에 관심을 가져왔다. 작가는 쓰레기 매립지에 세워진 도심공원에서, 침수 직후 뿌리가 얽히고 설킨 채 서로를 지탱하는 식물들을 발견한다. 작가에게 있어 사진은 곧 빛이 대상에 접촉하는 순간을 고정하는 행위이고, 따라서 땅의 경계를 흐리는 식물의 뿌리와 잔해들은, 그에게 잠재적인 피사체 즉 ‘씨앗’으로 발아한다. 그렇게 신작 <그라운딩>은, 매립된 공간을 오가는 “아직 오지 않은 이미지”(잠상)와 “이미 떠난 이미지”(잔상)를 통해서 “다가오는 빛”을 향한 작가의 태도를 발굴해낸다.

장서영은 영상 설치를 주요 매체로 신체와 시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신작 <오르페우스 후굴 시퀀스>에서는, 서구 신화 속 오르페우스의 나레이션이 이어지는 가운데 360도 액션 캠을 매단 요가인이 후굴요가 동작의 시퀀스를 늘려나간다. 그렇게 작가는 “뒤돌아보면 안 되는” 이야기 속 금기와 스크린 평면 안에서 360도로 회전하는 기술적 장치를 대비시키며 시간에 대한 공간적 해석을 시도하고, 이는 다시 인간의 가시성의 한계에 내재된 진보의 이상을 재고한다.

노예주는 동시대 한국 사회의 투쟁의 현장을 그린다. 액티비스트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작가에게 있어 회화는, 그렇게 아직 가시화되지 않는 현재를 기록하는 또 다른 액티비즘으로 구체화된다. 따라서 그에게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의 연대, 그리고 도심에 남겨진 새들을 추적하는 탐조 활동은, 회복 불가능한 상실의 기록이자 우연한 마주침의 연속이다. 신작 <몸은 결코 단일한 적이 없었다>는 나무 뿌리 이미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개체들의 관계성에 주목하며,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연대의 장면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Anticipation of a Contingency

Preface

A US biotech company recently announced a plan to revive the woolly mammoth that went extinct thousands of years ago. This project has its peculiarities not in the outdated fictional fantasies of Jurassic Park and the likes, but rather in the novelty of its objective. The team behind this ambitious move claims that reintroducing the woolly mammoth to its natural habitat, the tundra, would lead to the restoration of vegetation in the area and ultimately aid the battle against climate change. Now, despite a series of questions, or even doubts, that quite naturally follows, that’s a discussion to be saved another time. The fact is that the company has already secured an astronomical amount of investment funds. Who knows? It could be just a matter of time before we see those shaggy beasts roam in front of our eyes. That said, at this stage and time, there’s really only one thing that seems clear to us: the revival project, dubious at best, was justified and even materialized all based on a single statement that a solution to today’s climate crisis could be found. Then, what exactly is it that propels us to yearn for such miracles?

A clue can be easily found in the project’s press release. Written in polished words, the company’s statement reads that it plans to access mammoth genes from frozen tissue samples found in Siberia and copy them into the genome of an Asian elephant, relying on artificial wombs for gestation. If this sounds anywhere close to being likely, then maybe it owes to the fact that we have become all too familiar with such a sense of “reversibility.” Think about how restoring or undoing something that’s already gone or done has become a part of everyday life—one good example would be our reliance on the use of CTRL+Z. Accidentally losing your work because you forgot to save gradually became a problem of the past as cloud computing gained popularity, and wiping out your smartphone is now virtually impossible due to advanced digital forensic technologies; your texts will be recovered no matter what you do. The so-called “right to be forgotten” is always only temporary, no game character ever truly dies, and past timelines are no exception to being subject to edits and changes. Dents on cars are removed, aged skins are rejuvenated, and there’s even whitening options for our teeth. In the world of massive budget genre movies, every expansion of the universe begins by resurrecting all who had died during the previous installments. And at the very bottom of it all is a yet to be verified belief that when the pandemic ends, somehow we will once again return to normalcy. This faith in the possibility of everything being susceptible to restoration surrounds and fills our lives, and so it is not at all surprising how some expect to repair the damages done to this world by extracting DNA from frozen mammoths, as if opening a saved file.

However, the thing is, the kind of sensibility that underlies such thinking is deceitful from the beginning; our sense of “reversibility” is founded upon the very desire to erase embarrassing mistakes, cover up sins, and go back on words. Yet, Bringing back and repopulating the woolly mammoth doesn’t necessarily guarantee a full reload of the environment they used to live in. It won’t (and can’t) take us back in time to a place where we never were. This leads to a conclusion that turning to technology to fulfill hopes of reviving what’s already gone is really just an elaborate avoidance tactic; no problems are solved and nothing gets truly revived under this scheme. And within the implanted sense of everything seeming open to nullification, the resolution of the problems we face today is endlessly postponed. One way to better examine such rationale is seeing from the imperialist perspective on history. Their linear approach of selectively singling out past historical facts to explain the present and define the future regards males as the sole subject of history and further promotes the ruling class—males—to dominate space and time through “will”. And in this context, rewriting history is not the “restoration” of neglected voices, but rather an expression of a will to evade and escape from being held accountable for today’s problems; in essence, it’s a relentless propaganda aiming to spread faux beliefs that they own the power to restore what’s already destroyed as if nothing ever happened. But remember, what’s gone is gone. And for them, accepting this simple fact would be to relinquish “time”, which in this case equates to power they’ve been long holding on to.

Problem is, the fact that we’re all headed for grave despair is no more a secret. It is a fact that becomes ever obvious as we cling more and more to the possibility of restoration. Then, one could argue that rather than wait for the ruling class to voluntarily give up their dominance over history, there’s a better chance in announcing the fact that their incompetence has been already exposed, and move on to establish a new historical subject. After all, time is running out, and the methods (or perhaps tricks) of using advanced restoration techniques are set to soon lose any validity. The exhibition is organized and structured in a way that discards the historical causality which focuses on the chronological order of history and adopts the manifested incidentality encountered by helpless individuals. Rather than being confined to social systems and historical contexts, imagining the inevitable while seeking meaningful alternatives, the aim here is to explore the possibility of a being who, as an ethical-aesthetic subject, realizes its will through action, all the while expecting the unexpected. Certainly, it is an idea not immune to criticism, and could be perceived as elitist or contemplative. But that’s not the case: it serves more like a declaration to put an end to art conjuring up delusions in the guise of alluring fantasies. In other words, to rely solely on contingency is to give up the hope that beauty—whether lost or taken away—is recoverable and that historical repetition may lead us to a better place. Right here, right now, all there is for us to commit to is the individuals we come across; maybe it’s a feeling of fulfillment in life that we reach through acknowledging one another’s ignorance and finding where we could lean upon. Adopting a new way of life in a world where nothing is revived, expecting to see what we may encounter incidentally. This is the very meaning the exhibition wishes to con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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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reen Seno’s <To Pick a Flower> is a video essay composed of black and white photographs from the Philippines during American colonial occupation from 1898 through 1946. Here, Seno explores and reveals the relationship between American colonialism in the modern age and the photography technology that has been instrumental in spreading it. The images, merged with the artist’s desire to capture “the process of the natural transforming into the artificial”, poses a question of the meaning of selection and possession that’s inherent to photographic reproduction.

SHIN Min has been creating portraits in various shapes and forms of those who have become ‘targets’ in Korea’s society. Unlike the artist’s previous works that featured ‘crowds with angry faces’, <gaja> portrays faceless strangers to convey a different kind of sentiment. Effectively bringing to surface scenes of ‘counterattack’ staged by those that have been objectified as social minorities, Shin joins them together with the artist’s actual life to prepare grounds for the growth of communal strength.

Taking cue from the fact that photography is limited in its capability to wholly represent the subject’s existence, Minji Yi has been engaged with the concept of ‘relationship’ between the surface and the hidden side of photographs. And within an urban park standing atop a landfill site after the flood, the artist discovers plants supporting each other with their roots intertwined. To Yi, taking photographs is an act of securing moments of light coming in contact with the subject, and thus the roots and debris of plants are what blurs the boundaries running across the land and spouts into ‘seeds’—potential subjects of photography. <Grounding>, Yi’s most recent work, uncovers the artist’s perspective on “approaching light” through “images that haven’t arrived” and “images that have already left” that alternate within the landfill.

Seo Young Chang, using video installation as the main medium, explores the affiliation between body and time. <Orpheus' Backbending Sequence>, showcasing the artist’s newest endeavor, features a yogi equipped with a 360 action camera, incrementally increasing the range of the backbending yoga sequence, all the while a narration of Orpheus, a figure from Western mythology, plays in the background. And by contrasting the forbidden act “looking back” as found in the myth of Orpheus with a 360 degree camera device on a two-dimensional screen, Chang thereby delves in the possibility of rendering a spatial interpretation of time, which in turn reconsiders the ideal of progress inherent to the limits of our visibility.

Yeju Roh depicts the sites of struggle in contemporary Korean society. The artist—activist as identified by the artist’s own words—engages in painting as a form of activism and documents present that’s yet to be visualized. For the artist, showing solidarity with displaced residents of urban redevelopment projects and tracking birds in the city is, at the same time, a documentation of irreparable loss and a continuous series of contingent encounters. Representing Roh’s most recent creative contemplation, <The body has never been singular> centers around images of tree roots and explores the relationships between different entities, successfully symbolizing a scenery of solidarity in which each and everyone stands for one an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