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억

옛 그림이 다시 걸린다는 소식에 용기내어 편지를 씁니다. 그 그림을 시작했을 때가 기억나네요. 대학을 막 졸업했던 나는 미술관의 기획전에 처음 초대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흥분했던 것 같아요. 세상 모두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죠. 아무 것도 모르는 신진 작가였던 나는 대형 벽화를 주문한 큐레이터의 요구에 가벽이 아닌 벽만한 캔버스를 제공해 달라고 했고, 고심 끝에 꺼낸 말이 무색하게 며칠 만에 미술관은 대형 캔버스 여섯개를 보내주었습니다. 온전한 벽이 없었던 오래 된 상가의 작은 작업실은 갑자기 사방이 가로막힌 그야말로 화이트큐브가 되어버렸죠. 그 새하얀 면들이 공포스러워 일주일이 넘도록 선하나 긋지 못하고 막막한 마음에 나는 한동안 매일 미술관 주변을 계속 걷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겨우 어렵게 그리기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당시 나는 서울의 풍경에 계속 관심이 있었습니다. 밀레니엄이 시작되자 여기저기 글로벌!글로벌!을 외치는 소리와 함께 서울이란 도시를 두고 다양한 전망과 비판들이 쏟아졌죠. 사실 나를 움직인 것은 그런 역동적인 흐름이 아니라 바깥을 향해 나아가려는 존재 내부의 강렬한 욕구였어요. 고정된 삶에 이미 질려버린 이십대 초반의 나는 ‘바깥’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거의 본능적으로 끌렸습니다. 그러나 수줍고 무능력한 청년이 현실에서 시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죠. 새로 등장한 디지탈 카메라를 들고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을 관찰하며 걷는 일은 혼란스러웠던 시절, 스스로를 구체적으로 움직여 나아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이곳 저곳을 걷고, 사진을 찍고, 수집한 이미지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과정들을 반복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어떤 수행의 과정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풀리지 않는 내면의 구멍으로부터 스스로를 끌어올려, 미지의 바깥과 연결하기 위한 수행이요. 그리고 내가 나아가려는 바깥의 풍경과 내 안의 풍경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000년대 초반 겨울 문턱의 혜화동은 그렇게 그려졌어요.

이십년 후에 다시 보게 된 그림은 타인의 작업처럼 낯설게 보입니다. 나는 “본 것을 걸어가 듯이” 여전한 것과 더 이상 없는 것들을 구경합니다. 머무르고 이동하는 역 주변의 사람들과 형형색색의 간판과 누운 해의 빛을 따라 가니 겨울비가 고요히 내리고 있습니다. 조명이 켜지고 모든 것이 조금씩 빨라집니다. 거대한 회색 시공 속에 묻히지 않은 세부들이, 촌스럽도록 명랑해서 왠지 다행스럽습니다. 풍경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짙은 회색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흐린 하늘과 오후의 긴 그림자로 이어집니다. 그 짙고 깊은 침묵의 색은 내가 잘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더 오래 된 이야기이지요.

세 살 즈음이었어요. 어른들은 아기인 나를 늘 누워 지내시던 증조할머니 방에 둘 때가 많았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이었을 그 방에서 나는, 앙상한 몸을 가진 여인과 침묵 속의 여러 날을 함께 보냈지요. 말이 트이기 전에 먼저 다가온 연민, 분노, 공포 비슷한 감정들은 그때 내 안 어딘가에 들어와 깊숙이 박혀 버린 것 같습니다. 나는 빠르게 스쳐가고 서서히 가라앉는 매일의 풍경 속에서 가끔 옛날의 그 방을 생각합니다. 재개발 현장에서 처음 본 도시의 지평선. 굉음 속 긴 터널을 빠져 나올 때 들어오는 가득한 빛. 비 오는 도로변에서 부둥켜 안고 목 놓아 울고 있는 중년의 여자들. 출발하는 지하철을 따라 뛰면서 배웅하는 남자의 미소. 오돌토돌 모래알처럼 퍼진 중학생 조카의 이마 여드름. 꽃이 막 진 목련나무 앞에서 받은 동료의 부고. 손잡이가 떨어진 가방과 사방으로 흩어진 물건들의 배열. 마스크를 끼고 우연히 한 무리가 되어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가라앉는 배 안에서 찍힌 기울어진 풍경들. 정오의 해 아래 공을 차는 아이들. 양손을 흔들며 안녕을 알리는 고공농성자. 국경 너머 강가에서 여유롭게 물을 마시고 있는 한 마리의 개. 여전히 그 회색빛 방은 열려있고, 나는 종종 그 곳으로 돌아갑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긴 이야기가 되었네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밀레니엄의 서울, 그 겨울의 시공이 다시 열린다면 나는 그냥 걷고 싶습니다. 보통의 날, 보통의 걸음으로, 그렇게요. 혼돈 속에 놓친 공평한 하루를 백색의 잡음 속에서 회복하기 위해, 다시 시작된 미래의 기억 앞에 모두 ‘당분간 편안하게 흔들리’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인사드립니다.

/ 작가 이제는 불확실한 세계 속의 일상적 경험과 몽환적 상상을 현실감 있는 이미지로 그리며, 동시대의 정동을 포착하기 위해 회화의 매체적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www.leeje.net

*이 글은 《너무 늦지 않은》 전시의 참여 작품 〈혜화역 3번 출구 오후 3시, 2004, 2023〉를 위해 새로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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