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덕스럽게”
1.
벤야민은 한때 인용만으로 이뤄진 글을 쓰고자 했다. 나는 정희승의 신작에서 이 오래된 시도가 떠올랐다. 스물다섯 작가를 인터뷰하고 이와 관련한 이미지를 포착한 본 작업에는, 동시대 사상을 포집하고자 했던 저 방법론과 유사한 구석이 있는 듯하다. 따라서 나는 이에 발맞추어, 꼴라쥬로 형상화한 ‘오늘의 작가’에게 몇 통의 편지를 쓰고자 한다.
*
작가님께,
어쩌면 긴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인내심을 가져 주시길. 저는 지금 임시로 구한 숙소에 갇혀 있습니다. 얼마 전 네덜란드에서 귀국한 저는, 방역지침에 따라 2주 간 이곳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애초에 그럴 줄 알았지요. 저는 어느 모로 봐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두와 같은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저라고 남들과 다를 건 하나도 없지요. 그러니까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의 적막감은 저 역시 이전엔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감각이었습니다. 진공으로 포장된 공산품처럼 비닐 커버로 둘러싸인 체크인 데스크를 지나,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를 방역복을 입은 이들과 함께 탄 비행기 안의 공기는, 그만큼 어딘지 미심쩍었지요. 그 두려움을 안고 돌아온 고국에서 저는 곧바로 관리대상이 되어 방역절차라는 이름의 긴 줄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잉여’라는 어쩐지 낯익은 정체성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이렇듯 남는 시간은 언제나 제도가 그어놓은 선을 상기시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잉여로 되돌아가면서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계로 되돌아온 듯합니다. 제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그 내부인지 외부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요.
잘 모르셨겠지만 저는 출산 이후 네덜란드로 이주하였고, 그후 대부분의 시간을 온전히 육아에 쏟아왔습니다. 그 와중에 예술은 기실 여성, 외국인, 엄마, 아시안이라는 그 다중적인 정체성 바깥으로 유야무야 밀려났지요. 그건 그저 생활 속에서나 이따금씩 발견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한국 사회라는 궤도밖에서 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과 마주하진 않았는지 궁금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와 돌이켜보면, 실상 거기서 무엇을 겪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또렷한 건, 서구 유럽의 어느 수도 역시 이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기억 정도이지요. 글로벌 기업들에 둘러싸여 엇비슷한 음식을 먹고 동일한 물건을 소비하는 동질화된 개인들 틈바구니에서 외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한때 선망과 찬미의 대상이었던 유럽은 이제 도시 전체가 거대한 관광상품이자 박제된 유물처럼 보일 지경이었지요. 이 ‘원본’의 쇠락을 목도하면서 한 가지 분명해진 건, 그간 우리가 열심히 보고 배워온 것들이 거진 제 수명을 다해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마저도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관광객이 사라진 텅 빈 거리 위에 새들만이 날아다니는 봉쇄된 도시가, 그곳에서의 제 마지막 기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이제 저는―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살배기 아이의 모습에서밖에는―더 이상 아름다움을 느낄 마음이 남아있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간혹 미술관에서 희박하게나마 어떤 아름다움을 느낀다 하더라도, 이는 일상적인 냉소를 벗어나는 일탈적인 체험, 곧 예외성으로 확인될 따름입니다. 급기야 저는 아무런 의도성도 갖지 않는, 탈 제도화된 사물에서야 겨우 일말의 미적 자유를 발견합니다. 물론 지금 제가 일상의 모든 것들이 미적 가능성을 갖고 있단 식의 구태의연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단지 잉여로서 마땅히, ‘아름다움’이란 감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 할 뿐입니다. 언제부턴가 예술의 범주는 ‘제도’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순치되어, 그 아름다움은 오로지 그 집행자들에게만 인식되는 듯 보입니다. 여전히 두루뭉술하지만 그간 제가 예술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본 그곳의 풍경은 이와 같습니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주관적인 서술이 지닌 한계를 알지만―차라리 그 한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고―지금 저는 제 성장서사와 함께 하는 미술계의 어떤 장면들을 되새겨 보려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기억하는 ‘작가’의 첫인상은 분명 헐렁하고 허술한, 어떤 모습 혹은 태도였습니다. IMF 직후 입시에서 막 해방된 저는, 그 와중에 유학을 끝내고 돌아온 ‘영 아티스트’들의 전시 오프닝이나 이를 빙자한 갖가지 이벤트들에 자주 기웃거렸습니다. 작가님과 저는 지금은 사라진 홍대 앞의 한 대안공간에서 처음 만났었지요. 24시 김밥집에 둘러앉아 그곳의 비인간적인 노동에 격분하던 작가님의 첫 인상은, 다행이랄지 불행이랄지, 최근 발표하시는 작업과도 여전히 퍽 잘 어울립니다. 모든 게 자연스럽던 그날의 풍경은, 하지만 그런 무거운 이야기들보다는 그저 그 공간의 살가운 분위기와 낯익은 냄새로 더욱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아직 형식과 이름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뭘 하는 건지도 잘 몰랐지만, 단지 새로움이라는 매혹이 사람을 모으던 그런 현장이 있었지요. 재밌거나 과감하거나 때때로 사악하기도 했던 ‘그때 거기’에, ‘비주류’나 ‘언더그라운드’, 혹은 ‘하위문화’와 같은, 이제 서로 구분도 잘 안 되는 철지난 라벨을 붙이는 건 조금 맥빠지는 일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인디 뮤지션들의 드럼 비트가 온종일 울리던 그때 그 동네는 모든 게 꽤 그럴싸해 보였지요. 그리고 이 ‘자유’의 감각 속에서 작가는 제도 밖 경계를 돌면서 그야말로 스스로를 예술 그 자체라고 자신했던 듯합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아직 직업이기보단, 그 자신의 태도로 규정되는 어떤 자의식쯤으로 보였지요.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그들이 유영하던 그 ‘제도 바깥’은 빠르게 협소해지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그 무렵, 노동의 유연화에 있어 예술가들의 삶 또한 예외는 아니었지요. 마침내 도래한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한국 미술계의 제도적 시스템 역시 그 꼴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큐레이터란 직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쯤이었지요. 그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여전히 아마추어적인 태도를 고수했지만, 일찍이 영리한 이들은 전문가로, 글로벌 엘리트로 명품 잡지 따위에서 자신을 재현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제도의 파이가 선명해질수록 승자독식은 더욱 분명해져 갔습니다. 당시 성공한 소수의 작가가 ‘규모의 경제’와 조력해 빚어낸 현대미술의 스펙터클은, 오늘날 뮤지엄에 설치된 이들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게 다 뭔가요. 이 같은 제도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은 우리사회 내부에 그 어떤 뚜렷한 인과관계도 형성해내지 못했습니다. 한국미술시장의 기이한 구조에 대해선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하고, 미술은 과거의 권위와 대중의 기대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자신을 설득하는 것은 또 가능한 일인가요?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통령이 두 번 바뀌는 사이, 동세대는 예술이 노동임을 자처했습니다. 그 선언에 누군가는 예술 행위가 어떻게 노동이냐고 반문하기도 했지만, 그 질문은 외려, 오늘날 우리는 모두 노동자란 사실을 명확하게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들 젊은 예술가들의 언설은, 경제적 안전망에 대한 요구이자 예술계 내부의 계급성에 관한 폭로이기도 했지요. 또한 이는 동시에, ‘사회’가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제도 미술이 그 변곡점을 넘어섰다는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또래 작가가 말하는 “죽도록 열심히”해 “스타”를 꿈꾸는 개인주의적 의지는 여전합니다. 그리고 이 ‘능력에의 환상’은 끝내 그 인정구조 속으로 극소수의 예술가들을 흡수시키겠지요. 하지만 작가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제 십여 년 전과는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예술을 노동이라고 선언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저를 투영하고 세속화된 오늘의 미술을 봅니다. 따라서 지금의 제 잉여됨이 불러일으키는 이 모종의 익숙한 감각은, 분명 다 착각일 겁니다. 이제 미술(계)에 더 이상 잉여의 자리는 없습니다.
2.
정희승의 사진은 마치 얼크러뜨린 퍼즐 조각처럼 공간 안에 흩어져 있다. 쉬이 맞춰지지 않는 이 수수께끼 같은 파편들은, 전시 공간 전체에 걸쳐 하나의 태도를 암시한다: 맞추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퍼즐을 고안하려는 의지. 이는 무언가에 대한 명명이 오히려 그에 대한 오해를 부르는 상황과 닮았다. 그는 이를 피하려 한다. 즉 작가는 그 알 수 없는 상태를 긍정하면서, 완성될/되지 않을 것의 모호한 뉘앙스를 꾸미는 데 집중한다. 따라서 그의 사진-이미지는 피사체가 본래 놓여있던 상징 질서를 거부하고, 작가 자신의 말처럼 “아직 대상이 결정되지 않고, 의미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
작가님께,
오늘 오전엔 담당 공무원이 자가격리를 위한 구호 물품을 현관문 앞에 두고 갔습니다. 사소한 행정처리에도 두어 달이 걸리곤 하는 네덜란드에서는, 한국 사회의 이 같은 신속한 일처리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요. 개개인이 떠맡는 과도한 노동에 눈 감고 순전히 소비자의 입장에 서기만 한다면, 한국 사회의 시스템은―경험하면서도, 아니 경험할수록―믿기지 않을 만큼 편리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편리함은 대체로 감시와 통제를 동반하지요. 저를 ‘보살피’려는 양 양손에 먹을거리를 들고 온 공무원에게 실상 저는 지역구에 찾아온 잠재적 위험, 골칫거리에 불과합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대중교통과 공원, 거리에서 흔히 목격하는 공공 표지판, 인포그래픽, 현수막 등에는 “선진 시민”으로서 우리가 지켜야 할 규율이 적시되어 있고, 중앙정부가 하루에도 수차례 발송하는 ‘긴급 재난 문자’는 개인들의 행동 지침을 귀찮을 정도로 세세하게 안내해줍니다. 김강기명(각주1)은 권력을 점유한 국가가 시민들에게 뭘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알려주는 이 같은 통치방식이, 표준 시민을 ‘아동’으로 설정함으로써 미시적 통제와 ‘모성적’ 돌봄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여기서 ‘모성’은―그 비유에 담긴 오류와 편견을 김강기명이 우려하듯이―한국 사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왜곡된 개념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보호가 ‘보호받는 대상’을 전제하는 개념이라고 할 때, 보호자와 피보호자는 필연적인 교환 관계에 놓이게 되고, 이때의 ‘모성’은 돌봄이 추구하는 상호존중이나 관계성과는 분명 다른 지향을 갖습니다. 즉 이는 대상에 대한 ‘단속’에 가깝습니다.
몇 해 전 어느 지역 문화재단의 기금 설명회에 참석했을 때, 친절하게 행정 시스템을 설명해주던 담당자가 프로그램 말미에 희미하게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자리를 통해 자주 뭉쳐야 한다”고요. 일그러진 제 얼굴을 그가 봤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스스로의 무례함을 모르는 것은, 상대가 자신의 시선 속에 대상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탓일 테지요. 무지는 권력이라고 했던 정희진의 말이 떠오릅니다. 제도의 집행자와 그 수혜자 사이에 위계를 느끼는 건, 단지 제가 민감하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정부, 지자체, 자치구는 저마다 무수히 많은 지원제도를 만들어내고, 거기에선 그만큼 다양한 지원금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세분화된 기금이 늘어날수록 지원금의 규모는 더 잘게 쪼개지고, 그 각각의 범위는 보다 협소해집니다. 시스템이 지나치게 정교해짐에 따라 우리는 얼핏 그 조건이 쾌적하단 착각에 빠지기 쉽지만, 문제는 그것이 공동체의 신뢰 또한 정교하게 대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시스템에 예속된 개인들은 목줄을 찬듯 온순해집니다.
제 말이, 언제나 제도가 가장 문제이고 예술가는 약자란 진부한 푸념처럼 들리지 않길 바랍니다. 실상 동시대 미술은 제도와 공생하는 관계로, 제도를 횡단하지 않고선 도달 불가능한 지점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오늘을 만든 그 큰 상 역시 거대 기업의 후원에 기댄 것이고, 저 역시 기업에서 운영하는 기관에서 여러 해 봉급을 받고 살았습니다. 물론 비판하는 대상에 빌어먹고 있는 제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한 적도 있지요. 거기다 미술계라는 흐릿한 원 밖을 나와보니, 그 안의 취약한 연결을 대신하던 시스템의 공회전이 되려 미더워 보이기도 합니다. 또 이제 윤리적 순결주의는 얼마나 순진해 보이나요. 다 별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니까 실상 이제 그 누구도 예술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대신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단 사실이죠. 더군다나 주목할만한 사립미술관 하나 없는 상황에서 공공영역에 대한 의존은 일견 당연해보입니다. 거기서 예술은, 민간의 무관심을 대리하는 국가의 한 복지정책으로 단락화됩니다. 물론 제도가 스스로 강해진 것만은 아니겠지요. 동그란 원을 만들고, 단지 선에 불과한 저 원의 경계를 돌면서 그 폐쇄성을 강화해온 사람들이 있단 걸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제도의 선 위에 우뚝 선 전문가들은 예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오늘날 전문가의 사회적 위신은 붕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술계에서 있었던 미투는, 어느 예술가가 주변의 묵인과 방조로 성범죄를 지속해왔단 사실 뿐만 아니라 그 위력적인 개인이 제도적 자원을 독식해왔단 부조리 또한 드러냈습니다. 끊임없이 기업과 국가 사업에 용역계약을 맺던 소수와, 이들을 승인해준 폐쇄적인 제도.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 사기인가요? 예술가가 누려온 자율성의 신화는 진작에 수명을 다했습니다.
이왕 말을 꺼냈으니 더 비관하겠습니다. 어쩌면 이 세계엔 더 이상 예술을 작동시킬 수 있는 영역이 남아있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예술을 완벽하게 불가능하게 합니다. 가령 정치인을 넘어서는 퍼포먼스를 스스로에게 기대하길 힘들 때, 예술가는 기껏해야 제 자신과 그들을 조롱하고 마는 데 기꺼이 만족합니다. 도래하지 않은 세상을 담지하던 예술의 기능이 그렇게 마비되고 있습니다. 그 잉여에 발생하는 미적 체험은 누군가의 삶이나 태도를 변화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원래 있던 자리에서 탈주하게끔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사회가 제시하는 상징체계를 유린하고 제도가 권고하는 절차를 뛰어넘어 비로소 다시 개인으로 되돌아가도록 유인하는, 아니 떠미는 부주의함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술의 모습은 어떤가요? 잘개 쪼개진 지원금을 타기 위해 자신을 설명하는 그럴듯한 언설의 반복이나, 그럴싸한 상품성을 얻어 취향을 전시하는 매대 위의 고급 팬시 용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술은 이제 그 모든 위험성을 떠안고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안전한 곳에 가두고 위로하는 기능을 담지할 뿐입니다. 그렇게 모든 게 정해져 있는 제도 속에 스스로를 포박시킨 채, 맨질한 하나의 표피를 얻어 제도의 액세사리 역할을 할 따름입니다.
3.
정희승이 만난 작가들은 나이, 젠더, 계급, 경력, 위치성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이처럼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 바탕을 둔 이 편향적인 이야기는, 그 자의성으로 인해 예술이 지닌 일반화의 불가능성을 지시하면서 ‘오늘의 작가’를 드러낸다. 이때 그가 포착한 장면은 작가초상과 같은 사적인 삶의 단면에서부터, 작품 일부나 작업 과정과 같은 창작의 이면이다. 기실 창작 행위가 삶과 일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 속에서 이뤄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정희승이 담아낸 이 사진적 순간은 작가들의 구체적인 삶이면서 동시에 창작의 현장이 된다. 그리고 이는 곧 이런 질문을 불러온다. 창작 과정 혹은 작품 이면도 ‘사진가에 의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가?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작가 당사자로서 정희승은, 작품 안팎의 경계에서 ‘미술하기’라는 구체적인 행위가 예술 제도 안에서 미술이 ‘되는’, 그 불가해한 지점을 포착하고자 한다. 가령, 본 작업에는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제도적 승인과는 일견 무관한, 동료 작가 혹은 그들의 작품 이미지가 틈입하게 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정희승 자신의 작가성을 증명한다. 요컨대 결국 이들을 예술(가)로 만드는 것들은 무엇인가? 물론 이는 답해지지 않는 질문이다. 정희승을 경유해 전시장에 천연덕스럽게 걸려 있는 동료 작가의 작품 이미지가, 그것의 이전 상태―우리가 눈앞의 사진에선 결코 볼 수 없을―‘원작’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듯이 말이다. 이는 우리가 모르는 작품의 이면을 상상하게 만들고, 미술이 생산되는 방식과 인정구조(제도)의 비밀스러움을 유보시킨다. 이 미궁의 상태가 은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술이 불가능한 오늘날의 세계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정희승이 현 작업을 매개로 만난 동료 작가들에게 반복적으로 던지는, “너는 왜 이걸 하느냐”는 질문은 그렇게 종국엔 그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왜 이걸 하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궁극적으로 ‘미술하기’란 행위의 이유와 근거를 환기한다.
*
작가님,
지난 메일에서 제가 다소 냉소한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부터 이어진 긴 고립으로 인해 지친 것도 사실입니다. 그곳의 급작스러운 봉쇄 정책으로 인해 저와 제 가족은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돌아올 곳이 있단 건, 그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보단 낫다는 뜻일까요. 지금의 이 상실감은, 어렵게 꾸려낸 그곳의 일상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있었던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역병이 돌기 시작하던 무렵, 거리에서 저를 보면서 코와 입을 가리던 익명의 몸짓은 언제나 그 이유를 의심하게 했고, 바이러스가 합리화의 길을 터준 차별과 혐오 속에서 제가 맡던 그곳의 공기는 이미 달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분노를 느낄 바에야 철저히 타자가 되는 경험을 통해 더 아래로 내려가길 원하기도 했지요. 그곳에선 “신자유주의 시대 유일한 윤리적 주체가 ‘피해자’(각주2)인 덕분에 차라리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면, 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걸까요? 물론 누구도 언제나 약자일 수 없고 그 위치는 계속해서 변합니다. 돌아온 고국에서 제가 누리는 이 ‘관리받는’ 온건한 삶을 부정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제 눈에 분명히 보이는 것은, 오늘날 인간의 삶은 대체로 어느 정도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에 이미 너무 익숙해졌다는 겁니다.
느닷없이 저는 수도권과 강원도를 잇는 어느 터널을 떠올립니다. 길게 뻗은 직선 위로 달리는 자동차들, 땅은 곡선이지만 이 길은 직선으로만 이어집니다. 터널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산을 파내고 그곳의 생명을 내쫓았을까요. 그리고 그런 인간은 고작 어떤 취급을 받습니까? 사방에서 인위적인 소음과 시각적인 자극을 일으켜 졸음운전을 막는 경보 시스템은, 인간을 기계적인 반응 속으로 내몰아 스스로를 물화시킵니다. 폭력은 인간을 사물화시킨다고 했던 시몬느 베이유의 말처럼, 이 직선의 터널은 폭력이고, 플랫폼 경제를 떠받치기 위한 이 속도의 전쟁에서 인간은 저 자신 또한 화물차에 실린 짐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계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삶에서 예술가의 삶은 예외일 수 있을까요? 이제야 비로소 제가 작가님의 안부를 묻는군요.
잘 지내셨는지요?
이 물음을 위해 말이 길었던 듯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오늘의 작가에게 남아있는 가능성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간혹 우리는 예술가들이 어떤 기술로도 대체 불가능한 직업이라는 예측을 접하곤 합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일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그런 말들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연 그러긴 할까요? 이 인간적인 행위를 대체할 수 있는 과학기술은 이미 충분히 확보된 듯합니다. 얼마 전 인공지능이 썼다는 소설을 읽어봤습니다. 데이터를 방대하게 수집한 인공지능의 언어는 웬만한 소설가의 그것보다 나아 보이더군요.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편집한 영상이나 고안한 설치, 비범한 회화는 이제 작품에서 ‘작가성’을 지우기에 마땅한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듯보입니다. 더군다나 비평이 권위와 자격을 상실한 시대에, 비평적 가치에 호응하지 않는 예술에 대한 대중의 주목과 관심은, 사람들이 예술에 실로 기대하는 게 무엇인지 암시하는 듯합니다. 적어도 삶을 ‘진짜’로 위험하게 만들지 모를 예술은, 익숙한 환상 속에 머물고 싶은 이들에게 환영 받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상 예술이 처한 가장 큰 위기란 더 이상 미학적 쟁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 우리는 뭘 몰라서가 아니라 다 알아서 속수무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 저는 작가님께서 예술을 이제 그만두셨으면 합니다. 모두가 예술가가 된/될 수 있는 시대에, ‘직업적 예술가’가 제도 예술에 부피와 두께를 더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요? 무언가를 계속 만드는 것은, 단지 고성장 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오랜 습관이 아닌가요. 어쩌면 우리가 최선을 다할수록 세상은 점점 더 망가져 가는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시스템을 존속시키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를 합리화시킬 수 없다면, 마지못해 끌고 온 관성을 이제 그만 떨쳐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저는 차라리 아무도 예술을 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곤 합니다. 예술이 없어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살갗 밑에는 뭐가 있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저는 작가님을 여전히 믿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여기 없지요. 당신은 예술계 모두일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아닙니다. 당신은 모두와 닮아있고 아무와도 닮지 않았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러니까 바로 당신의 부재로부터 비롯합니다. 그동안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누가 당신을 사라지게 만든 건가요? 적어도 그게 우리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그게 제일 괴롭지요. 누군가를 탓할 수 없단 것 말입니다. 지금 당신은 대체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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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벤야민의 기획은 미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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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 김강기명, “유럽이 한국으로부터 배울 수 없는 것”, 2020.4. https://firenzedt.com/?p=5909
(각주2) 정희진, “정희진의 낯선 사이-방역독재자, 순교자를 꿈꾸다”, 2020. 9. 16일자, 경향신문
* 이 글은 정희승 작가의 의뢰에 따라 “오늘의 작가”가 당면한 현실을 조망한 에세이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0 도록에 실렸다.
Nonchalantly
1.
Reminiscent of Walter Benjamin, who once attempted to write a text with only quotations, Chung Heesung’s new project is based entirely on the words and works of other artists. Composed of Chung’s images and interviews with twenty-five artists, this work recalls the somewhat familiar method of compiling contemporaneous ideas from an array of astute minds. In response, I’ve also decided to borrow the collage format by writing a few letters to the “artist of today.”
Dear Artist,
This letter might be a bit long, so please be patient. I’m stuck in temporary accommodations. After returning to Korea from the Netherlands, I’m in self- quarantine for two weeks. But I knew about this in advance, and I am certainly no exception. I’m no different from anyone else, and I’ll follow the same guidelines as everyone else. The silence and desolation at Amsterdam Airport Schiphol was a strange sensation, unlike anything I’ve ever experienced before. After checking in at the ticket counter, where everything was vacuum-sealed in plastic covers, the air inside the plane cabin felt a little suspect. Some people were even wearing protective clothing that they got from who knows where, which made me a little fearful. Returning home with that fear, I immediately became a target to be managed, and made to wait in a long line for so-called “quarantine procedures.” But after all, I was pretty familiar with this identity as a “surplus” person that was awaiting me. Having extra time on my hands always reminds me of the lines drawn by the system. Ironically, I became a surplus being again at the very moment that I seem to have returned myself to the field of art, although I’m still not sure whether I’m standing inside or outside.
You might not be aware, but after giving birth and moving to the Netherlands, I spent almost all of my time on childcare. In the meantime, art simply faded away, having no space inside my manifold identity as a woman, foreigner, mother, and Asian. Art was just something that I occasionally found in life. Of course, you might think that, since leaving the orbit of Korean society, I must have had some new experiences, encountering things I’ve never faced before. But looking back, I don’t really know what I experienced while I was there. All I know for certain is that the capital cities of Western Europe aren’t so different from here. Everywhere I went, I couldn’t escape the realm of homogenized individuals surrounded by global companies, eating the same foods and consuming the same products. At one time, the cities of Europe were the object of such envy and admiration as global tourist attractions and historical sites frozen in time. Witnessing the decline of this “original” makes me feel that everything we’ve eagerly seen and studied is coming to an end. But these days, even that type of experience is hard to come by. My last memories of Europe are of a city on lockdown, empty streets devoid of tourists, given over to the birds.
I’ve felt like I’ve lost the capacity to feel beauty, except perhaps when I see a three-year-old looking in the mirror. Even if I catch a quick glimpse of something beautiful in a museum, it just feels like an anomaly, an exception to the overlying cynicism. Eventually, the only hint of aesthetic freedom that I can find is in de- regulated objects with no intentionality. Let me emphasize that I’m not trying to say something trite about how everything in our lives has aesthetic possibilities.
I’m simply reconsidering the essence of beauty from the perspective of a surplus person. Ever since art was domesticated by institutions, artistic beauty has become the exclusive domain of its administrators. This idea might seem a little vague, but that’s how the landscape looks to me since I took a step back from the art field. So what’s going on here?
I recognize the limitations of subjective narration, but for now I’m going to embrace those limitations in order to express how my views of the art world have changed as I’ve grown. My first impression of you—the Artist—was a certain looseness or clumsiness in your attitude and appearance. Having finished my college entrance exam just after the 1997 financial crisis, I often snuck into the exhibition openings of young artists who had returned after studying abroad, or other events like that. You and I met for the first time by Hongdae, in an alternative art space that is no longer there. You were indignant about the harsh working conditions at the 24- hour gimbap place where we were sitting, an attitude that still resonates in your recent work, for better or worse. But rather than being weighed down by these heavy thoughts, the scenes of that day remain vivid and fresh, when everything felt natural in a friendly place filled with familiar smells. It didn’t have a finished form or a name, and I wasn’t aware of exactly what was happening at the time, but there were certain places where people would gather, drawn by the mere fascination of novelty. It’s such a downer to label something so fun and bold and mischievous with the same old worn-out terms: “alternative,” “underground,” “subculture,” etc. Looking back, when the pulsing drums of indie musicians resonated through the neighborhood, everything seemed glorious. And back then, the artists had this sense of freedom from being outside the system, and the sheer confidence of knowing that they themselves were art. Rather than a profession, being an artist was a matter of attitude, or self-consciousness. But even then, the territory outside the system was already shrinking. By the 2000s, the lives of artists could no longer resist the pull of “labor market flexibility.” The arrival of neoliberalism was followed shortly by the institutionalization of Korean art, and suddenly the profession of curator has emerged in earnest. While a few chose to maintain their amateurish status within this flexible labor market, the wiser ones began using prestigious journals and other venues to represent themselves as experts or global elites. As the prize became clearer, so did the monopoly of winners. The phenomenon of contemporary art as spectacle, which was created at that time by a few successful artists collaborating with economies of scale, can still be seen in installations in museums today.
But to what end? Despite this institutional expansion and growth, contemporary art hasn’t formed any clear causal relationships within our society. Art has lost any semblance of authority or public expectations, and the Korean art market, with its bizarre and bewildering structure, has become an embarrassment. Then how do we persuade ourselves to keep going? Since I graduated, over the course of two presidential terms, our generation consented to the claim that art was labor. While some young artists questioned how the act of art could be considered labor, their questions only seemed to confirm that we are all laborers now. As such, their remarks could be read as a demand for an economic safety net and a disclosure of class within the art field. And at the same time, it seemed like a sign that institutional art had crossed the point of no return, enacting a reality in which “society” was impossible. Nevertheless, like the young artist who said “I want to be a star at any cost,” the individualistic will is still prevalent in this scene. And this illusion of meritocracy will persist by periodically incorporating a few artists into its structure of recognition based on effort and ability. But Artist, don’t you know enough by now to see that the reality that awaits us is much different than it was a decade ago? Projecting myself onto my colleagues who declare art as labor, I see today’s secularized and commercialized art. So my familiar sense of being “surplus” beings must be a delusion, because in today’s art field, there is no more space for surplus.
2
Like mixed-up pieces of a puzzle, Chung Heesung’s photography is scattered in space. These fragments that refuse to be easily assembled become a riddle, infusing the exhibition space with a desire and determination to complete a puzzle that has missing pieces. Sometimes a name causes us to misconstrue the true meaning of a thing, rather than the opposite. But Chung affirms and even embraces this state of inscrutability, focusing instead on the ambiguous nuances of what will or will not be completed. By rejecting the conventional symbolic systems for the subject of photography, her images occupy a state in which (in her own words) “the subject has not yet been determined, and the meaning has not yet arrived.”
Dear Artist,
This morning, the government official in charge of my case brought some relief supplies for my self-quarantine, leaving them by my door. Coming from the Netherlands, where even the simplest administrative procedures can take a couple months of more, the rapid response of Korean society has been hard to fathom. Our society is the pinnacle of convenience—as long as I remain on the side of the consumer, averting my eyes from the excessive labor required by faceless individuals. No matter how many times I experience this convenience, it’s still hard to believe at times, but we should remember that it comes at the cost of surveillance and control. To the government official who carried food in both hands to “take care of” me, I’m just a potential hazard who strolled into the neighborhood from parts unknown. It’s not just me. Everywhere we go these days—public transportation, parks, sidewalk— we’re bombarded with signs, banners, and infographics reminding us of the rules that we should follow as “citizens of an advanced country.” Throughout the day, the government sends out a massive amount of emergency alerts instructing us what we should or should not do, almost to the point of exhaustion. For critic Kim Kimyoung, this type of government micromanagement is a form of “maternal” care that treats citizens like children. [1] Of course, Kim was well aware of the prejudices embedded in this analogy, given the distorted concept of the word “maternal” within the patriarchal ideology of Korean society. Since protection presupposes a “protected object,” both the protector and protected are locked in an inevitable exchange relationship. In this case, rather than mutual respect and reciprocity, “motherhood” implies a degree of control over a “protected object,” rather than care.
A few years ago, when I attended an event to award funding from a local cultural foundation, a staff member kindly explained the program and administrative system to me. He finished up by saying, with a faint smile on his face, that, “People who don’t have money or power should get together more often through this kind of event.” I’m not sure if he saw the frown on my face. Seemingly unaware of his objectification of others, he was equally blind to his rudeness. It’s not that I’m super- sensitive to the hierarchy between the enforcer of the system and the beneficiary. The federal, regional, and district governments of Korea have established a number of support systems that provide a nonstop flow of funding for various purposes. But when funding is too compartmentalized, it becomes more difficult to comprehend, smaller in quantity, and less effective. As the system becomes more elaborate, we are more susceptible to the illusion of its benevolence. Yet the real problem is that the system is equally elaborate in displacing the trust of the community, until those who are subordinated to the system become as tame as pets on a leash.
I don’t want this to sound like another banal complaint about the evils of the system or the disadvantages of being an artist. In fact, contemporary art has a symbiotic relationship with this system, such that every artist must pass through it. The big award that made you who you are today is also sponsored by a major corporation, and I’ve been getting paid by a corporate institution for many years. Of course, I once felt ashamed of myself for relying on the object of my criticism. To be honest, after I left the blurry circle of the art field, even this system stuck in neutral and riddled with weak connections started to look somewhat reliable. How naive does that ethical purity seem now? But there’s no other way. Now no one is afraid of art, but instead, artists are afraid of “them.” In Korea, which doesn’t have a single independent, private art museum of any real significance, art’s dependence on public subsidies and corporate sponsorship seems inevitable. To compensate for the indifference of the private sector, the government treats art like a welfare recipient. Of course, the system has not grown stronger on its own. I’m very aware that some people have closed ranks by drawing a circle to create a boundary that is actually just a line. And how well do the experts who are standing on that line really know art? Today, the social reputation of experts has collapsed. The recent #MeToo movement in the art scene revealed how sexual predators disguised as artists committed their crimes with the acquiescence or even assistance of those around them, and it has also revealed the absurd power of those who monopolize institutional resources. Within this closed system that continuously awards corporate contracts and government projects to the same select few, what is art and what is fraud? The myth of the supposed autonomy of artists has long since expired.
Since I’ve already come this far, I’ll go a little further with my pessimism. Maybe there’s no more place in our world for art. In today’s society, art seems completely impossible. When an artist can never hope to top the performance of a politician, the only thing left is parody, or self-parody. The former function of art, to present a world that has not yet arrived, has been paralyzed. In the surplus, aesthetic experiences had the power to change a person’s life or attitude, and thus to help them break free from their point of origin. That power lay in the reckless imprudence that coaxed or coerced a person to violate the symbolic system of society, to break through the procedures recommended by the system, and ultimately to return to living as an individual. But what about art now? It’s either a repetitive specious statement aimed at acquiring compartmentalized funding or an expensive trinket that mixes taste with marketability. Rather than taking the risk of trying to change us, art just brings us into a place of supposed safety and comfort. By binding itself in such ways, art has been reduced to a sleek accessory to the system.
3
The artists who Chung Heesung met are different in age, gender, class, career, and location. Thus, as a biased story, based solely on “people she knows,” the work is less generalizable. Indeed, even in revealing the “artist of today,” the work suggests the impossibility of generalizing any art, which is inherently arbitrary. Representing the other side of art creation, Chung’s scenes capture slices of private life, in the form of portraits of artists or pieces of works in progress. Reminding us that art is made in an ambiguous realm between life and work, her photos embody both the specific lives of the artists and the very site of art creation, raising the inevitable question: can a photo of an artwork being created be an artwork, in and of itself? As both an observer and an artist, Chung seeks to identify, and perhaps even to occupy the inexplicable point at which a certain act becomes “art” within the existing system. In this exhibition, for example, Chung’s work is interrupted by the images or works of other artists, which are seemingly irrelevant to the institutional approval of the Korea Artist Prize. Yet this very irrelevance paradoxically proves Chung’s value as an artist. So what makes them art? What makes an artist? Of course, these questions are unanswerable. The images of other artists’ works appear naturally in the exhibition space, nonchalantly hung there by Chung herself. By provoking our curiosity about the original work, which they can never show us, these images compel us to ponder the hidden side of artworks, while also pulling back the curtain to reveal the secrets of how art is produced and approved by the system. What is the meaning of this mysterious state of affairs? In today’s world, where art is impossible, must we continue in this way? In the end, the question that Chung repeatedly asked her fellow artists—“Why do you do this?”—returns to her as “Why do I do this?” Likewise, this question ultimately summons the reason for making art.
Dear Artist, I think I was a bit cynical in the last letter. I have to admit that this long isolation from Europe is wearing me down. Because of the sudden lockdown, my family and I had to hurry back to Korea. But at least I have a place to come back to, unlike some people. This sense of loss has revealed the fragility of everyday life, which we worked so hard to maintain. When the pandemic first started, while I was in Europe, I was confused when anonymous people on the street would cover their nose and mouth when they saw me. The virus had paved the way for the discrimination and hatred that was now polluting the air that I was breathing. Instead of getting angry, I wanted to fully inhabit the experience of being the Other. If I said that, “I felt some relief, since the only ethical subject in the neoliberal era is a victim,” would I be deceiving myself?[2] Of course, everyone’s status continually changes, and no one is always the minority. I can’t deny the well-managed, moderate life that I enjoy in my home country. But it’s clear to me that human life today is perpetually exposed to various degrees of violence, and even worse, we’ve become accustomed to it.
All of a sudden, I find myself thinking about the tunnels connecting Seoul to Gangwon Province. Even though the landscape is filled with curves and mountains, the cars run through it in a straight line. How many mountains had to be dug to build those tunnels, and how many people had to be evicted? And even after all that, how are people treated? Alarms to keep drivers from dozing off at the wheel, and artificial noises and visual stimulation bombarding people from all sides, eventually triggering mechanical responses, turning humans into materials and objects. If Simone Weil was right when she wrote that “violence turns anybody subjected to it into a thing,” then surely these straight tunnels are violence.[3] In this fast-paced battle to prop up the platform economy, humans are no different from delivery goods in the back of a truck. Can the life of an artist be an exception to this rule? I’ve finally gotten around to asking how you’re doing.
How have you been?
I know, it took me a long time to get to this question. So I’ll ask you again. What possibilities remain for artists today? Some have said that the job of an artist is too human to ever be replaced by technology, but that doesn’t bring me any comfort. And by the way, do you really think that’s true? This ultimate “human” act could probably already be replaced by state-of-the-art technology. Not long ago, I read a novel written by an AI program, and the language was just as good, if not better, than most novelists. And now AI-edited videos, AI-designed installations, and extraordinary paintings by AI are providing an alibi for abandoning human authorship or art production. Furthermore, in an age when criticism has lost its authority and influence, the public response to art that ignores critical values seems to reveal people’s true desires or expectations for art. At the very least, those who want to stay in a familiar fantasy will not welcome art that can “really” threaten their life phases. The biggest crisis facing art is that it can no longer create aesthetic issues. We’re helpless not because we don’t know anything, but rather because we know everything.
For this reason, Artist, I hope that you’ll stop being an artist. Now that everyone can become or has become an artist, do we really need professional artists to increase the volume and thickness of institutional art? After all, making things is just the ingrained habit of people caught up in the inertia of perpetual development. Maybe the harder we strive to do our best, the quicker we destroy the world. If we can’t even justify why we’re maintaining the system of the past, can’t we get away from the indolence that we’ve reluctantly accepted? Now is the time.
I sometimes imagine a world where no one makes art. What would the world look like without art? I wonder what’s beneath the skin. I still believe in you, dear Artist, but you’re not here right now. You could be the entire field of art, but at the same time, you’re no one. You look like everyone and you don’t look like anyone. The reason I’m writing to you is because of your absence. What’s really been going on in the meantime? Who made you disappear? I don’t think we did that. Actually, the most painful part is that we cannot blame any of us. Seriously, where are you?
Meanwhile, Benjamin’s project to write entirely with quotes remains unfinished.
1) Kim Kimyoung, “What Europe Cannot Learn from Korea,” Firenze’s Dining Table (April 2020), https://firenzedt.com/?p=5909.
2) Jeong Heejin, “Unfamiliar Relationship: Quarantine Dictator Dreaming of Martyr,” Kyunghyang Shinmun, September 16, 2020.
3) Simone Weil, War and the Iliad, trans. Mary McCarthy (New York: New York Review of Books Classics, 2005).
At the request of Chung Heesung, this essay looks at the reality faced by the “artist of today.”